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92식 70mm 보병포 (문단 편집) == 실전 == 실전에선 일본군이 원했던 대로 보병에게 수반되어 다용도로 사용되었다. 탄피는 재활용이 가능했으며 그다지 크지 않은 크기로 공격과 방어시 모두 활용되었고 경곡사포와 직사포를 겸하는 양용성으로 운용이 용이했다. [[중일전쟁]] 부터 [[할힌골 전투]], 그리고 [[태평양 전쟁]]까지 사용되었다. 그러나 같은 급의 박격포와 비교해서 크고 무거워 진지 변환이 용이하지 않았고, 결정적으로 종래의 [[곡사포]]와 다름없는 포연으로 발사위치를 파악하기 쉬웠다. 이는 진지변환의 어려움과 중첩되어 단점으로 작용했으며, 공세시에도 마찬가지였다. 대 전차전을 위한 [[철갑탄]]도 개발되어 있었지만, 여타 일본군 대전차포가 그렇듯 성능은 형편없는 수준이었다. 100m에서 30mm, 500m에서 25mm, 1000m에서 20mm 정도의 관통력 밖에 없었으며, 대전기에 개발된 3식 철갑유탄([[성형작약탄]])을 사용해도 90mm가 고작이었다. 일본에도 스토크블랑식 박격포가 도입되어 [[81mm 박격포#s-2.3|97식 곡사보병포]]라는 이름으로 제식화 되었지만, 도입시기가 92식 보병포 배치시기와 맞물렸기에 다시 체계를 갈아업고 편제를 재편성하는데에 부담이 컸던데다, 스토크블랑식 특성상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명중률은 일본군에게 감점요소였다. 발사속도가 높지만 명중률이 낮은 체계는 일본군의 부실한 보급체계로 탄약 소모량을 받쳐 줄 수 없다는 이유였다. 실제로 92식 보병포만 해도 탄약보급에 무리가 따랐다. 그 때문에 97식 박격포는 소수만 도입되었고 92식 보병포를 완전히 대체하지 못했다. 중국 전장에서는 그럭저럭 쓸만했다. 우선 상대하는 중국군은 중화기가 변변치 않았고, 방호시설의 수준도 낮았기 때문에 92식 보병포의 화력으로도 충분했고, 도로사정이 열악한 중국 전장의 특성상 상대적으로 가볍다는 것도 제법 이점이였다. [[일본의 항복]] 이후, 중공군이나 국민당군이나 모두 중화기가 부족했기 때문에 노획한 92식 보병포를 [[국공내전]]에 투입했고, 자체로 카피 제작하기도 했다. [[한국전쟁]]에서도 중공군은 92식 보병포를 다수 운용했다. 해당 체계를 노획한 [[미군]]은 그럭저럭 좋은 평가를 내렸고, 따로 노획무기 운용교본을 발간하기도 하였다. [[분류:지상 병기/세계 대전]]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